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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정신과 폐쇄병동 실습

5월은 싫든 좋든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폐쇄병동에 갇혀서 환자들과 같이 지내야만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실습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폐쇄병동 안에서는 책, 필기구, 핸드폰 등 일체의 소지품 지참을 금하기 때문에. 게다가 혼자 가만히 있어서도 안 되며, 계속 환자와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하므로. 온종일 그렇게 환자들과 함께 있고 2주 정도 지나니 꽤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조현병, 예전 말로 정신분열병인 환자. 병동 내 환자 중 증상이 가장 심한데. 망상이란 망상은 다 가지고 있는듯하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혹시라도 나와 관련된 망상이 생기면 어쩌나. 두려워서. 한 달 동안 다가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이 환자의 경과기록을 작성하게 되다니. 어쩔 수 없이 매일 환자와 대화를 나눠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냥 환자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기로 했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해도 혼자 쉬지 않고 얘기하며 두세 시간은 쉽게 넘기는 환자.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참을 지속하다가. 어쩌다 보니. 꿈에서 현실로 돌아와 얘기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다. 환자의 가족 얘기였다. 엄마, 아빠, 남편, 아들...듣다 보니 참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환자는 얘기하면서 참 서럽게도 울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 엄마 모습이 보였다...

그 환자가 우리 엄마처럼 두 아들을 두어서 그랬던 건지.

아들에 대해서 속상하거나 미안했던 일을 얘기할 때.

그 아들 모습이 마치 내가 엄마를 대할 때 모습과 닮아서 그랬던 건지.

자꾸 엄마 모습이 겹쳐서 힘들었다...나도 참 불효자인데...

내 개인적인 경험을 환자와 나누면서 공감하거나 위로해주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으려나.

분명 내가 지금 이 환자에게 역전이가 된 거겠지. 


그때 그 상황을 들으니.

좀 전에 들은 수많은 망상이 왜 이 환자에게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찢기고 약해진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상처받지 않으려면 이런 망상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20년 넘게 정신병원을 들락날락 거리며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아주머니.

꼭 나아서 사랑하는 두 아들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지만, 여기 있는 동안 망상이라도 잘 들어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