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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랏빛

Sub Note - 1


신군은 용산전자상가에서 노트북을 고치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고 있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을 타면 오늘은 앉아서 집에 갈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동인천 급행열차에 몸을 실었다신군은 오늘은 특히 전자상가를 돌아다니느라 너무 피곤해서 가능하면 꼭 앉고 싶었지만, 너무 늦게 승차했는지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열차인데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신군은 오늘도 어김없이 집까지 서서 가야만 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게 뭔지 알아

 용산역에서 시작하는 열차를 용산역에서 탔는데도 앉을 자리가 없을 때야.”




신군은 여자친구인 정양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날도 신군은 일어날 사람을 잘못 예측해서 용산에서 동암까지 서서 왔다
. 허탈하게도 동암역에서 자리가 생긴다.

신군은 평소 속된말로 '촉'이 없어서, 지하철에서 서서 오는 날이 많았다.

여자친구 정양은 부평에 살고 신군은 동암에 사는데 서울에서 놀다가 영등포역에서 인천행 지하철을 타면 앉아오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자리가 생기면 정양을 앉히고 신군은 그 옆 사람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 온 후 2년 동안 집에 앉아서 온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다.

어느 날도 부평에서 여자친구가 내리자, 신군은 한 정거장이라도 앉겠다며 방금까지 여자친구가 앉던 자리에 앉는데, 엉덩이에 뭐가 배기는 것을 느꼈다. 일어나보니 엉덩이 밑에 검은색 공책이 놓여 있었고, Sub Note라고 Death Note 짝퉁처럼 생긴 공책이 있었다.

서브노트 첫 페이지에는 마치 데스노트처럼 사용법이 나와 있었는데, 지하철에 타고 있는 누군가의 이름과 역이름을 공책에 쓰면 그 사람은 그 역에서 무조건 내리게 된다고 쓰여 있었다. , 임신부와 노약자는 이름을 써도 효과가 없다나 어쩐다나.

하여튼 다음날 지하철 안에서 장난삼아 공책에 여자친구 정양의 이름과 바로 다음 역인 신길역을 썼더니, 갑자기 정양이 내일 아침까지 마감할 일이 있는데 회사에 노트북을 놓고 왔다며 다시 가져와야겠다고 신길역에서 급하게 내린다.

신기해하며 집에 돌아온 신군은 근데 서브노트가 있어봤자 사람들 이름을 모르는데 이게 진짜 효과가 있더라도 무슨 쓸모가 있겠냐며 노트를 버리려 하는데. 데스노트의 사신 비끄무리한 지하철 천사가 신군 앞에 나타난다. 그동안 신군이 지하철에서 항상 서서 가는 모습이 하도 불쌍해 보여 지지리도 운 없는 신군을 위해 서브노트를 줬다고 한다. 신군이 사람들 이름을 모르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냐며 화를 내자. 천사는 진정하라며 천사의 눈에는 사람들 머리 위에 그 사람 이름과 내리는 역 이름이 보인다고 자신의 눈을 사지 않겠냐고 한다. 신군이 반가운 마음에 대뜸 사겠다고 하자. 앞으로 지하철에서 앉아 갈 수 있는 대신 버스에서는 무조건 서서 가야 한다고 한다. 신군은 '앞으로 지하철만 타면 되지.' 생각하고. ‘지하철 천사의 눈을 덜컥 사고 만다. 천사는 단순히 자리를 앉는 데만 이 능력을 쓰려고 하지 말고 좀 더 잘 활용하길 바란다고 말하며 사라진다.

그날부터 신군의 눈에는 사람들 머리 위에 흰 글씨로 그 사람의 이름과 내리려는 역이름이 둥둥 떠있는 것이 보인다. 대신 버스는 그날부터 항상 만원 버스에 타게 되어 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원래는 1400번 버스를 이대역에서 타면 무조건 앉아올 수 있었는데, 우연인지 아니면 신군이 천사의 눈을 사서인지 그날부터 삼화고속이 파업을 하고 운행 버스가 줄게 되어 이대역에서 타도 언제나 서서 집에 오는 상황이 반복된다. 어쩌다 타게 된 버스에서 자리라도 생기면 신군이 앉자마자 어르신이 타셔서 자리를 양보해드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렇다. 신군은 착한 학생이었따.

이제 신군은 지하철을 애용하게 되었고. 사람들 머리 위에 그 사람이 내리는 역이 보이기 시작하자 서브노트를 쓸 필요도 없이 가장 빨리 내리는 사람 앞에 서 있다가 그 사람이 내리면 그때부터 앉아서 편하게 집에 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면 이리저리 지하철 칸을 돌아다니며 가장 빨리 내리는 사람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정양이 어차피 다른 칸에 가도 서서 가야 하니깐 처음 들어온 칸에 그냥 서 있자고 해도 신군은 자기를 믿으라며 정양을 끌고 다른 칸으로 옮겨가고 바로 다음 역에서 내리는 2명 앞에 서있는다. 곧 앞에 앉은 두 사람이 동시에 내려서 자리가 생기자 정양은 신기해하고. 언젠가부터 둘이서 나란히 앉아 집에 오게 되자 신군은 엄청 뿌듯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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