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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이집트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게을러서 발전이 없다?

사람들하고 떡볶이를 먹으며, 얼마 전 이집트에 다녀온 누나와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이집트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 전이다.

누나 : 거기 가이드가 그러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열성만 남아서 선천적으로 게으르다고 하더라고. 역시나 이집트 사람들, 약속을 잘 안지키더라.
옆의 형 : 그래? 그게 뭔 소리야? 왜 열성만 남았는데?
누나 : 우성인 사람들은 오래전에 전부 다른 나라로 이민 가고, 현지에는 열성만 남았데...어쨋든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이 게으르고, 여태까지 발전이 없는 거라고 하더라고.
옆의 형 : 그래? 근데 열성만 남았음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져야 하는거 아니야? 열성은 갈수록 도태되는거 아냐?

곧 화제가 바뀌어서 자세한 얘기를 하진 못했지만.

우리가 쉽게 잘못 생각하는 두 가지가 있다.

1. 열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가 진행되면서 사라진다.
2. 안 좋은 건 열성이다.

1. 열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도태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열성 형질은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없어진다면 우성 형질이 더 쉽게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멘델의 제2법칙, '분리의 법칙'을 생각해보면 쉽게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멘델의 제2법칙이 무엇인가. 잡종끼리 교배하면 자손 중에 우성 표현형과 열성 표현형이 3:1의 확률로 나타난다는 거 아닌가. 즉, 잡종 속에 숨어있던 열성 유전자가 교배가 일어나면, 그제서야 분리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뭔가 감이 잡히는가. 좀 더 쉽게 이야기해 보자.

우리 몸에는 두 가지 유전자가 들어 있다. 하나는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고, 하나는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다.
우리 몸엔 두 가지 유전자가 모두 존재하지만 정작 겉으로 표현되는 특성(형질)은 하나다. 우리가 키가 크면서-동시에 작을 수 없고, 머리카락이 곱슬이면서-동시에 직모일 수 없듯이. 우리 몸에 있는 두 가지 유전자 중에서 하나만 밖으로 표현된다. 멘델은 이렇게 두 유전자 중에 밖으로 표현되는 특성(형질)을 우성이라 했고, 반대로 몸 안에 감춰진 형질을 열성이라고 했다.

즉, 열성은 밖으로 표현되지 않고, 그 존재를 감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전적으로 어떠한 이득이 있냐면. 예를 들어, 걸리면 죽을 가능성이 대단히 큰 어떤 유전병이 열성이라고 해보자. 그렇담 부모로부터 동시에 열성 유전병 유전자를 받아야만 자기가 유전병에 걸릴 수 있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정상 유전자를 자식에게 물려줬다면 자식은 정상으로 표현될테고, 왜냐면 정상이 우성이니깐, 그 자식은 유전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 자식은 분명 몸 안에 유전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성인 정상 유전자가 밖으로 표현되고, 열성인 유전병 유전자는 몸 안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자식은 병에 걸리지 않고 유전병 유전자를 또다시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반대로, 그 유전병이 우성일 경우에는 어떨까. 그렇담 부모 중 한 명만 유전병 유전자를 자식에게 전달해도 그 자식은 바로 유전병에 걸린다. 이번에는 정상 유전자가 열성이고, 그 자식은 정상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유전병에 걸린다. 결국, 유전병 유전자를 가지는 모든 사람이 유전병에 걸리게 되고, 다시말해 이 유전병은 우성이므로, 열성 유전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전자를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확률도 떨어진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그 유전자는 도태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왜 시간이 지날수록 열성 유전자보다, 오히려 우성 유전자가 살아남기 어려운지 이해가 가는가. 열성 유전자는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우성 유전자는 그 유전자가 버틸 수 없는 어떤 환경변화가 왔을 때 그 유전자를 가진 모든 사람이 깡그리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2. 게으른 성격은 열성이다?

열성을 '열등한 성질'이라는 의미로 쓸 수도 있으나. 위의 대화처럼 우성과 대비되는 용어로 사용하는 열성(recessive)은 열등(inferior)과 다르다. 열성(recessive)인 유전자가 반드시 열등(inferior)한 것은 아니다. '열성'과 '열등'이란 단어가 비슷하게 생기고, '우열'이란 단어 때문에 마치 열성 유전자라고 하면 열등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다. 열성은 단지 우성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아까도 말했듯 서로 다른 유전자가 같이 있을 때 밖으로 표현되지 않는 유전자를 뜻한다.

실제로 곱슬이 직모보다 우성이고, 육손이, 이게 뭐냐면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 정상보다 우성이며, 반대로 손가락 개수가 적거나 짧은 단지증도 정상보다 우성이다. 유명한 유전병인 헌팅턴무도병도 우성이다. 대머리, 주근깨가 우성이다. 진화가 진행되면서 우성으로 수렴하는 성질이 있다면, 사람은 대머리에 주근깨투성이에, 곱슬에, 손가락은 여섯 개 또는 그 이상이거나, 반대로 4개 이하이거나, 헌팅턴무도병도 감기처럼 흔한 질병이 되어야 한다. 알겠는가. 사람은 결코 우성으로 진화하지 않고, 그렇다고 열성으로 진화하는 것도 아니다. 열성, 우성으로 정상, 비정상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열성을 소위 덜떨어진 유전자로 생각해서도 안된다.

유전자가 무엇이냐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우생학이다. 우리 모두 고등학교 때 멘델의 유전법칙 정도는 배운 사람들 아닌가. 생물학과 우생학은 엄연히 다르다. 예전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근거가 우생학이다. 유대인을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기며 학살하는 자신들을 합리화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외모나 혈액형, 성별로 능력과 성격을 판단하는 것도 이런 나치의 우생학과 별반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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