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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랏빛

독감


독감
카테고리 기술/공학 > 의학 > 의학이론 > 예방의학
지은이 지나 콜라타 (사이언스북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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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외국책은 번역이 이상하면 읽기가 어려워서 가능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특히나 과학을 주제로 한 책은 지정된 과학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번역도 이상해서 원서보다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잦다.
다행히도 이 책은 번역이 잘 되어 있어 쉽게 읽힌다. 얼마 전 읽은 「죽음의 향연」도 번역이 잘되어 있어서 좋았는데 다시 보니 두 책 모두 안정희 씨가 번역했다.

신기하게도 1918년 독감(스페인 독감)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전투로 인한 사망자(920만 명)와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전사자(1590만 명)를 훨씬 웃도는 약 2000만 명에서 1억 명이 1918년 독감으로 죽었다. 1917년 미국 평균 수명은 51세이지만, 독감이 퍼진 1918년 평균수명은 39세로 이 수치는 대략 50년 전 수준이다. 미국인의 평균 수명이 갑자기 12년이나 줄어든 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이 1918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하기 시작했고, 여러 자료를 통해 그 당시 1918년 독감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토록 큰 피해를 보고도 왜 사람들은 그 파괴력을 인지하지 못한 것일까. 책에 나오듯 그 당시 미국은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독감보다도 전쟁의 무서움이 더 컸을 수도 있다. 독감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정신없는 전시 상황에서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자는 2000만 명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이 독감으로 죽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1918년 독감은 정말 그렇게 무서운 질병이었을까. 1918년 독감이 관심을 받지 못한 이유는 이 독감이 실제로도 별거 아니었기 때문은 아닐까. 전시라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의사가 감기와 독감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죄다 독감으로 보고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마치 독감 백신 부작용으로 길랭바래 증후군이 제시되자 많은 의사가 비슷한 모든 증상을 길랭바래 증후군으로 진단했던 것처럼, 1918년 독감의 위험성도 확대재생산 되면서 과장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