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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랏빛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것

시간이라는 게 참 웃기다

정작 주어졌을 때 소중함도 모르고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지나갔을 때는 참 아깝다

아깝고, 아쉽고, 후회되고


교도소의 형벌은 소위 자유형이라 한다

수감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그게 오늘 참 크게 느껴졌다


인생을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고

그걸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데

그걸 제한하는 것


단순히 사회와의 단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정 부분의 시간을 떼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담

비록 교도소에 수감돼있지 않더라도

주어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면

교도소에 갇혀있는 수감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시간을 다 흘려보낸 후에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일. 만나고 싶었는데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곳을

아까워하며 후회할테니까

마치 교도소에 갇혀서 자유를 박탈당한 재소자들처럼


영화 <그린 마일>을 보면 수시로 교도관들을 골리고 겁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악질 사형수 와일드 빌(샘 록웰)도 조사실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재소자들은 조사실에 들어가는 걸 참 싫어한다

어짜피 조사실 들어가기 전에도 이미 교도소 내에서 좁은 방에 있다가

조금더 행동반경과 움직임이 제한되는 것 뿐인데 뭐가 그리 싫은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근데 오늘 재소자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나마 제한적으로 허용되던 자유까지 완전히 박탈될 때의 

그 고통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는 것은

그 시간동안 교도소에 갇혀지낸다는 것이다


재소자들을 진료하면서 여러 재소자들을 만나게 된다

제한적으로 허용된 조그만 자유를 가지고 최대한 풍요롭게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단지 이 안에서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기 위해 온 신경을 쏟고 그런 것에만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도 있다


국가가 비록 자유를 제한했지만, 그 사람의 시간까진 가져가지 못한 사람

국가는 그 사람의 자유만 제한했는데, 자신의 시간까지 헌납하는 사람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보려고 온갖 수를 쓰고 그런 것에만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면 

조금은 이곳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만큼의 시간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