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늘 아래

포도 할머니

7월. 

고혈압으로 약 타러 오신 할머니.

맥이 불규칙하길래 평소 가슴이 두근거리진 않으시냐고 했더니.

그런 건 없는데 가끔 가슴이 묵직할 때가 있다고 하셔서 

진료의뢰서를 써드렸었다.


오늘 오전. 

두달만에 다시 진료를 보러 오신 할머니께 

저번에 큰 병원 다녀오시라고 말씀 드렸는데 잘 다녀오셨냐고 여쭤봤더니.

가방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서 보여주신다.


Atrial fibrillation(심방세동)과 moderate CAOD(중등도 관상동맥폐색)이 발견되어 치료를 시작했다는 충주건대병원 소견서.


선생님 아니었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뻔 했는데 덕분에 살았다며 감사해하시는 할머니.

아니에요. 제가 뭐 한 것도 없는데요. 치료하기로 하셨다니 다행이네요.

이렇게 얘기하고 넘겼는데.


오늘 오후.

어느 아저씨가 오셨다.

옆집 할머니가 보건소 지나는 길 의사 선생님 전해주라고 하셨다며 건내주시는 포도 한상자.


그동안 진료의뢰서 써드리면.

"아니. 살만큼 살았는데 뭘 또 검사하라고 그래. 그냥 평소 주던 약이나 줘."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

열심히 설득하며 진료의뢰서를 상세히 써드리면서도 힘이 빠질 때가 많았었는데.


이렇게 고마워하시는 분도 있다는 사실에.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노력하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위안과 힘을 얻는다.